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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5-09-14 0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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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릉 식수난 바라보는 ‘빗물 박사’ 한무영 교수

한무영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장이 기후위기 시대를 맞아 빗물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우산을 들어보이고 있다. 최기웅 기자

강원도 강릉시가 기록적인 가뭄에 고통을 겪고 있다. 정부와 지자체도 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제한 급수를 시행하는 등 총력 대응에 나섰다. 저수지에 물을 공급하기 위해 초대형 산불 진화 헬기와 살수차도 긴급 투입했다. 급기야 24년간 봉인됐던 평창 도암댐 방류까지 재개하기로 했다. 현지에선 인근 속 카드사 초시처럼 지하수 저류댐을 미리 마련했어야 한다는 목소리도 커졌다.

이에 대해 한무영 서울대 건설환경공학부 명예교수는 “속초시의 저류댐도 하류를 가둔 것이라 생활용수로 쓰기엔 일정 부분 한계가 있다”며 “기후위기가 날로 가속화하는 현실 속에서 물 부족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댐과 저수지에만 의존하는 기존 방식에서 건강보험납입확인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그가 강조한 실질적 해법은 ‘빗물’. 25년 넘게 빗물 연구 외길을 걸으며 ‘빗물 박사’로 널리 알려진 한 교수를 지난 9일 서울대 관악캠퍼스에서 만나 만성적인 가뭄 극복 방안 등에 대해 들어봤다.
스타시티 빗물탱크로 ‘상습침수’ 해결

119머니 살수차들이 강릉시 오봉저수지에 물을 뿌리고 있다. [연합뉴스]

Q : 빗물이 과연 댐·저수지만큼 효과적인가. A : “강릉시의 연간 평균 강수량을 감안하면 1년간 내리는 빗물의 양은 15억t에 달한다. 그런데 이 많은 비를 거의 다 바다로 흘려보내고 있는 게 현실 아닌가. 빗물을 용돈 가둘 생각은 하지 않고 하천에만 모든 부담을 지우는 건 어리석은 일이다. 저수지는 일종의 빗물 그릇이다. 강릉 오봉저수지가 가득 차도 전체 빗물의 10%밖에 못 담는다. 나머지 90%는 그냥 버려지는 셈이다. 그러니 이 비를 모을 그릇을 도시 곳곳에 만들자는 거다. 건물 옥상 녹화를 하면 빗물을 모으는 동시에 도시 침수도 막을 수 있다. 또 비닐하우스나 빚탕감 태양광 발전 설치 지역에 빗물저장탱크를 만들면 과거 논이 맡았던 빗물 그릇 역할을 대신할 수 있다.”
Q : 빗물탱크를 만드는 것도 돈이 들지 않나. A : “일반 주택에 정화조 시설을 설치하는 비용 정도다. 그도 아니면 옥상에 작은 물받이만 설치해도 된다. 서울대도 2012년 공대 옥상에 가운데는 움푹 들어가게 하고 가장자리는 높인 ‘빗물 텃밭’을 조성한 결과 빗물을 최대 170t까지 모을 수 있었다. 모인 빗물은 청소·조경·농업용수로 활용하고도 남았다. 이런 시설은 전국 어디에서도 쉽게 설치할 수 있다. 강릉시 빙상장 지붕에만 받아도 엄청난 양이다. 그런데 우리는 아직도 저수지나 하천에 모인 물에만 의존하려 하니, 비가 안 오면 모자라고 많이 오면 넘치는 고질적인 문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 교수가 설계에 참여한 서울 광진구 스타시티 지하의 빗물 저장 장치는 세계적인 치수(治水) 성공 사례로 꼽힌다. 당초 스타시티 주변은 상습 침수지역이었다. 한 교수는 이런 현실을 고려해 건물 설계 때 지하 공간에 빗물을 3000t까지 저장할 수 있는 탱크를 배치했다. 그 결과 집중호우 때는 빗물을 가둬 주변 지역 침수를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었고, 평소에도 모은 빗물을 효과적으로 활용하면서 연간 공용 수도요금을 불과 3000원대로 줄일 수 있었다.
서울대 토목공학과를 졸업한 한 교수의 원래 전공은 상하수도공학이었다. 더러워진 물을 깨끗하게 만드는 수처리 전문가였던 그가 ‘빗물 전문가’로 변신한 건 ‘처리할 필요가 없는 깨끗한 물’에 대한 고민의 결과였다. 한 교수는 “빗물이야말로 태양열에 의해 증발했다가 지상으로 내려온 깨끗한 증류수”라며 “복잡한 수처리 과정 없이 바로 쓸 수 있는 이상적인 수자원인 셈”이라고 강조했다.

남태평양 섬나라 바누아투에 빗물 활용법을 전수한 한무영 교수. [사진 한무영]

그렇게 1990년대 말 빗물 연구에 본격 뛰어든 한 교수는 2001년 서울대에 빗물연구센터를 설립하는 등 사반세기 동안 빗물 홍보대사를 자처해 왔다. 지금도 서울대 빗물연구센터장과 국제물협회(IWA) 빗물관리분과위원장, 세계보건기구(WHO) 기술자문위원, 사단법인 물과생명 대표 등을 맡으며 활발히 활동 중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는 물 부족 사태로 고통받는 세계 각국을 돌며 빗물 활용법을 전수하는 데도 힘을 쏟고 있다.
Q : 지난달 스톡홀름에서 열린 ‘세계 물주간’ 행사에선 측우제도를 소개했는데. A : “세종실록지리지에는 세종대왕이 1441년 전국에 측우기를 내려보내 강수량을 매일 보고토록 했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후 300여 곳에서 강수량을 측정하는 등 전국적인 네트워크를 통해 빗물을 체계적으로 관리했다. 이처럼 우리 선조들의 현명한 물 관리 철학을 활용하면 오늘날 기후위기 시대의 해법도 충분히 찾을 수 있을 거다. 내년 아부다비에서 열리는 유엔 워터 컨퍼런스에서도 측우제도의 우수성을 널리 알릴 예정이다.”
Q : 기후위기가 날로 심각해지고 있다. A :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집중호우가 잦아진 것 못지않게 도시화로 인해 땅이 더 이상 빗물을 잡아주지 못하는 것도 범람의 위험을 키우고 있다. 산불이 부쩍 잦아진 것도 이런 영향이 크다. 그런 만큼 나무나 돌을 이용해 물이 모이도록 만든 자연 빗물 저장소인 ‘물모이’를 산 곳곳에 조성해 토양이 일정 수준의 습기를 유지하도록 하면 산불을 선제적으로 예방할 수 있고 불이 났을 때 소화용수로도 활용할 수 있을 거다.”
Q : 비는 깨끗하지 못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A : “빗물에서 처리해야 할 불순물이 생각보다 많지 않다. 동의보감은 음력 정월에 처음 내린 빗물인 춘우수(春雨水), 가을철 이슬을 받은 추로수(秋露水) 등 빗물을 약제에 쓸 만큼 좋은 물로 봤다. 빗물에 섞인 먼지나 꽃가루 등 무거운 입자성 물질은 비가 내리기 시작한 지 10~20분만 지나도 중력에 의해 자연스레 침전된다. 돈이 덜 들면서도 훨씬 깨끗한 물을 얻을 수 있는 셈이다. 해외에선 깨끗한 빗물을 병에 담아 팔기도 한다. 빗물을 원료로 한 호주의 ‘클라우드 주스’는 일반 생수보다 더 고급이란 인식이 퍼지면서 값도 더 비싸다.” 세종대왕 측우제도 우수성 해외 소개 빗물에 대한 관심은 건기와 우기가 뚜렷이 구분되는 열대 몬순 기후 지역 국가들 사이에서 특히 높다. 한 교수가 남태평양과 동남아의 만성 물 부족 국가들 초청을 받아 빗물 관리 교육을 벌이게 된 것도 이런 연유에서다. 특히 캄보디아에서는 2022년부터 현지 정부와 협력해 전국 학교에서 체계적인 빗물 활용 교육을 펼치고 있다. 한 교수는 “선진국이라고 해서 수질 관리 선진국은 아니다. 필요성을 덜 느끼기 때문”이라며 “반면 생존의 문제와 직결된 국가들은 빗물의 중요성을 갈수록 절감하는 모습”이라고 전했다.
‘빗물로 널리 이롭게 하겠다’는 한 교수의 ‘우리(雨利)론’은 어느새 섬나라와 개발도상국의 열악한 물 관리 환경도 조금씩 바꿔나가고 있다. 그는 “해수 담수화나 지하댐 건설도 필요하지만 어마어마한 비용은 결국엔 다음 세대, 즉 우리 아이들이 부담하게 된다”며 “미래 세대의 부담을 줄이려면 지금부터라도 빗물을 허투루 흘려보내지 않도록 물 관리 체계를 세밀하게 점검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Q : 그렇게 모은 물을 어떻게 관리해야 할까. A : “무엇보다 정부 정책의 기본 방향을 물의 공급에서 수요 관리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국민 1인당 물 사용량이 해외 선진국의 2배에 달하는 근본 원인부터 해결해야 한다. 우리나라 1인당 하루 평균 물 사용량은 300L인 반면 싱가포르·독일·호주 등은 우리의 절반인 150L를 사용한다. 그렇다고 불편을 호소하는 사람도 없다.” 한 교수는 그러면서 “가장 쉬운 생활 속 실천 방법 중 하나는 ‘절수형 변기’를 쓰는 것”이라고 소개했다. “일반 양변기는 한 번 물을 내릴 때 최대 13L를 사용하는 데 비해 절수형 변기는 4L만 쓴다. 2017년 서울대 변기 500개를 절수형으로 바꿨더니 연간 10만t의 상수 사용량을 줄일 수 있었고 비용 절감 효과도 1억원에 달했다. 물을 끌어오기 위해 사용하는 에너지에서 배출되는 탄소량도, 사용하는 물도, 그만큼 처리해야 할 하수도 줄일 수 있으니 절수형 변기야말로 ‘1석 3조’인 셈이다. 이젠 ‘빗물=돈’, 즉 빗물이 돈이 되는 시대가 됐다. 가뭄에 내리는 비만 단비라고 반기며 넘길 게 아니라 일상 속의 모든 비를 새롭게 바라봐야 할 때다.”
허정연 기자 jypow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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